top of page

작가노트

내면은 즉 무의식, 일반적으로 각성하지 않은 상태,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자각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무의식은 개인의 내면 깊은 곳에 잠재되어 있으며 쉽게 본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개인의 모든 행위는 깊은 내면의 무의식으로부터 끌어져 나온다. 무의식은 개인이 생애를 살아가며 지나쳐온 모든 시간을 압축하고 있으며 그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무의식, 즉 한 개인을 형성한다.

 

나는 이러한 무의식, 내면이 마치 석회동굴과 같다고 생각한다. 지하수는 석회암 지반 아래로 흐르며 석회동굴을 만들고 오랜 시간 동안 하나의 종유석을 형성한다. 여기서 지하수는 외부로부터의 영향과 자극이며 종유석이 형성되는 것은 그로 인한 경험들이 쌓여 개인의 무의식을 형성하는 것이다. 일생동안 꾸준한 자극을 받으며 개인의 내면, 즉 각자 몸속의 종유석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내면의 종유석에는 쉽게 잊고 말아버리는 일주일 전 점심 메뉴처럼 사소한 것부터 잊을 수 없는 유년 시절의 아픔까지 담고 있다.

 

나는 동굴을 나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며 작업한다. 내가 만든 동굴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동굴 속 실제 종유석이 아닌 묘한 모습의 종유석을 볼 수 있다. 색색의 블럭들, 오래된 일기장 등 평범하고 오래된 나의 물건들이 종유석이 형성되듯 해체되어 켜켜이 쌓여있다. 이것은 뒤섞이고 쌓여 나의 ‘내면’을 형성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물건들로 만든 종유석은 나의 어린 시절 취미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의 환경까지 투영해서 보여준다. 혼자 노는 것을 즐겼던 아이, 아이를 혼자 남겨 둔 부모, 부모가 맞벌이를 해야 하는 상황, 아이가 혼자 남을 수밖에 없었던 환경, 그 사이 자라서 벌써 커버린 아이.

 

설치 작업인 ‘deep space’의 공간은 낮은 입구로 인해 들어가기 힘들며, 들어가서도 허리를 곧게 펴고 일어설 수조차, 두 다리를 뻗을 수조차 없는 답답한 밀폐공간이다. 어둡고 축축한 그곳은 누군가에겐 불쾌하고 불편한 느낌을 줄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어머니의 자궁 같은 익숙하고 아늑한 편안한 공간일 수 있다. 또한, 깊은 바다 속 혹은 우주 속 홀로 남겨진 외로운 감정을 느낄 수 있는 혼자만의 공간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작가는 관람객에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사유의 공간,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휴식의 공간, 불편하고 외로움의 공간을 제공한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