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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나는 내면의 부유물을 나만의 시각으로 설치와 드로잉으로 표현한다. 내가 형상화한 내면의 떠 있는 부유물에는 여러 색상의 실들이 한데 엮어 어우러지거나 바깥을 향해 무수히 뻗어있다. 나는 실들을 하나하나 직접 엮으며 작업한다. 한 올의 실마다 내가 겪었던 외부의 영향들을 품고 있다. 이러한 실들은 서로 엮여, 내면을 더욱더 단단하게 조여주거나 새롭게 조합되어 여러 패턴을 만든다. 그리고 그것들은 안에 있는 에너지를 금방이라도 내뿜을 준비를 하고 있다. 외부의 수많은 영향을 받으며 자라난 내가, 이제는 반대로 외부로 영향을 주는 사람으로서의 시작을 준비하는 위치에 있기에, 그 속의 잠재된 에너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나는 이전까지 계속해서 내면의 종유석 작업을 해왔다. 어릴 적 기억 속 아픔이 고착되어 딱딱한 종유석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어릴 적 트라우마나 외로움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과거에 머물러있는 것보다 과거를 활용해 다시 세상으로 선한 영향을 주고 싶다. 응어리는 계속해 남아있지만 곱씹는다고 풀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그것을 활용해 다른 사람들에게 똑같은 실수와 상처가 반복되지 않도록 세상에 다시 말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로인해 작품 속 과거 경험으로 인한 상처를 남들에게 돌려주지 않도록 행동하는 에너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잠재력을 담고자 했다.

방 한가운데 위치한 작품 <옭아맨 응어리>는 천장에서부터 내려와 넓게 퍼진 실들이 허리짬에서 좁아지다가 다시 땅으로 향하며 넓어진다. 그리고 천장으로 퍼진 실들은 마치 방 또한 자신의 일부가 된 듯 사면의 벽을 타고 감싼다. 실을 엮어 만든 <옭아맨 응어리>는 무질서한 사슬의 연결로 이루어졌다. 실들은 엉키고 꼬여 하나의 커다란 종유석의 형상을 만든다.

 

종유석 속엔 나의 아주 사적인 물건들이 위치한다. 여러 색들의 레고들은 사슬에 꽉 맞게 끼어있다. 이것은 나의 어린시절을 투영하는 오브제이다. 혼자 남겨진 시간동안 장난감들로 집과 사람들을 만들어 역할놀이를 하던 기억이 종유석 속 존재한다.

 

나는 종유석의 천천히 덩어리가 고착되는 형성과정을 개인의 내면의 응어리가 고착되는 과정과 동일시한다. 개인은 각자 어렸을 적 경험과 같은 외부의 자극에 의해 자신만의 종유석을 만들어 낸다. 내면의 응어리가 형성될 때, 한번 자극이 일고 난 뒤 쉽게 털어버리기는 쉽다. 하지만 그것이 차근차근 쌓여 거대한 응어리를 이뤄버렸다면 나의 내면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는다. 실이 마구 엉킨 듯, 더는 다시 풀어내기 어렵다.

 

<옭아맨 응어리>는 검정과 밝거나 어두운 갈색을 띠고 있다. 이는 실에 날염하여 만들어 낸 색감이다. 여러 불규칙한 색들은 개인의 하나의 응어리가 형성될 때 외부로 인한 다양한 경험과 자극이 스며들어 갔음을 의미한다. 늘 상 보내던 하루와 건네던 말들이 잊혀 사라지는 것이 아닌 녹아서 계속 나와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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