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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줄기 맡에 딴딴히 여문 열매가 주렁주렁 아래로 늘어진다. 굽이진 줄기를 따라 내려와 땅의 이면을 본다. 뿌리는 깊게 흙을 쥐고 양분을 가릴 것 없이 빨아들인다. 체나 거름망 따위는 없다. 그저 처한 상황 속, 있는 그대로를 취한다. 애정의 손길로 자라난 열매는 탐스럽고 알알이 가득 차기 마련이다. 하지만 후미진 곳 마구 자란 열매는 대개 앞날이 험하다.

 

  개인마다 각각 저마다 열매를 맺는다. 우린 세상에 숨과 울음이 터져 나올 때부터 외부로부터 영향과 자극을 받는다. 걷는 것부터 말을 떼는 것, 집단에 적응하는 것, 그리고 살결로 느끼는 모든 환경을 체득한다. 처한 상황은 거를 틈도 없이 하루는 지나가고 쌓여 무차별한 양분이 된다. 그렇게 먹고 자란 날들은 내면의 열매를 맺는다. 주변의 온갖 여건을 빨아들여 열매를 피우는 나무처럼, 개인은 경험한 외부의 영향이 함축된 열매를 만든다.

 

  언젠가 무르익은 열매는 누군가에게 먹혀 영양분이 되거나, 생명력을 줄 수 있는 에너지를 갖는다. 잘 익은 열매는 개인이 외부로 영향력을 뻗을 수 있는 상태에 미친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외부의 영향은 바깥에서 한 개인으로, 그리고 다시 외부로 내뱉어지고 되풀이된다.

 

  나는 개인의 내면 속 부유하는 열매를 형상화한다. 열매는 여러 실이 어우러진 둥그런 형태로 위에서 아래로 매달려 있다. 뜨개질과 스킬자수 latch hook 를 활용하여 형형색색의 실을 한데 엮고 묶는다. 한 올의 실마다 개인이 겪어온 외부의 영향들을 품고 있다. 엮일수록 끈질기고 단단해지는 실처럼, 지나온 모든 날은 매듭지어 완전한 내면을 만든다.

 

  실은 안에서 엮이며 바깥을 향해 무수히 뻗는다. 뿜어지는 실 가닥은 열매의 에너지를 보여 준다. 개인을 자라게 한 환경이 외부에서 개인으로 흡수되고, 다시 밖으로 향하는 흐름을 실의 방향으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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